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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뉴스]밥 한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한 이선구 사랑의 쌀 나눔운동본부 이사장(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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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7-30 00:00 조회9,6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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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쌀 나눔운동본부(이하 사랑의 쌀)는 지난 2007년 1월 불우한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사랑의쌀은 그동안 각종 경조사 및 행사 등에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화환 대신 쌀을 모으거나 ‘쌀화환’ 구입을 통한 후원으로 해당 지역의 소외계층에 쌀을 전달했다. 이런 노력으로 대한민국 사회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나눔 운동이 정착돼 가고 있다. 이 작지만 뜨거운 나눔 운동 중심에 ‘희망릴레이 칭찬합니다’의 3호 주인공 이선구 이사장이 있다. 산파 역할을 한 사랑의쌀을 넘어 이제 ‘빨간 밥차’의 밥 한 끼를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이 이사장.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이사장을 만나 ‘WE’의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 정경뉴스



대한민국의 화환시장은 약 1조원이다. 화환은 한순간을 위해 잠시 쓰고 버려지는 형식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로 꼽힌다. 보여 주기 위한 이 거대한 소비문화 뒤엔 수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가려져 있다. 지난 2007년에 설립된 사랑의쌀(이사장 이선구)은 그동안 각종 행사나 경조사에서 한순간 사용하고 버리는 화환 대신 쌀을 받아 중증장애아동, 독거노인시설, 결식아동 등 불우한 소외계층에 전달했다. 사랑의쌀은 이제 개인 후원을 넘어 기업 및 정부기관, 사회단체의 자발적인 범국민적 운동으로 나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사랑의쌀 중심에는 바로 이선구 이사장이 있었다. 새로운 나눔 운동의 산파이자 선봉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이제 빨간 밥차를 통한 따뜻한 밥 한 끼로 세상을 데우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WE’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됐다.

낮은 데로 임하다
이선구 사랑의쌀 이사장의 과거는 화려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남부럽지 않게 산 준재벌이었다.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던 건설회사의 최고경영자(CEO)에다 서울 강남의 값비싼 아파트를 몇 채 갖고 있는 그였다. 강남의 팔레스호텔과 마포 가든호텔, 인터뷰를 한 사무실의 고층 빌딩도 그의 손으로 지었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상류층 사람들을 사귀면서 이들과 함께 골프채나 휘두르고 안 가 본 곳 없이 해외여행을 다닌 이 이사장이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즐길 수 있는지’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큰 재난이 닥쳐왔다.
“IMF라는 국가 재난이 오면서 쓰나미처럼 수많은 건설 업체가 무너졌어요. 당시 고리처럼 연결돼 도미노처럼 쓰려진 업체 가운데에는 저의 사업체도 포함돼 있었죠. 그 많던 재산은 모두 경매로 넘어갔고,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셋방살이가 시작됐어요.”
당시 건설업의 시스템 구조는 한 회사의 분양을 위해 책임질 수 있는 두 회사가 연대보증을 서야만 했다. 이 이사장 역시 상호 연대보증을 하며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사업을 해 왔다. 이런 고질적인 구조는 IMF를 맞은 수많은 건설 업체를 쓰러뜨리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됐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아이러니하지 않던가. 어느 날 재난으로 찾아온 IMF는 이 이사장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전환점이 됐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낮아질 대로 낮아졌죠. 깊은 수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보니 잘살 때는 보이지 않던 소외된 사람들이 그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한겨울에 전기세를 못내 얼어서 돌아가신 독거노인이 보름이 돼서야 발견되고,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등지에 기거하던 노숙인들이 얼어서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당시 비참했던 제 현실에 오히려 감사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희망전도사인 그라고 해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을 긍정의 힘으로 곧장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현실에 처자식을 보며 비참함이 밀려왔다는 이 이사장.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고 했던가. 한 끼 밥값이 없어 컵라면으로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도로 한순간 몰락한 그를 보며 사람들은 수십억 원을 뒤로 빼돌렸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감내하기 힘든 하루하루였다.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을 보면서 이 이사장 또한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당시 죽음만이 모든 것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던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런 이 이사장을 죽음의 수렁에서 건진 것은 바로 어릴 적에 믿은 신앙이었다.
충남 천안이 고향인 이 이사장은 13채의 기와집과 많은 소작인을 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부친이 일찍이 운명을 달리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집안은 결국 몰락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병든 누이와 서울로 올라온 그의 모친은 끼니를 연명하기 위해 온갖 장사와 밀주(동동주)를 빚어 팔았다. 그러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두 남매의 배는 항상 주려 있었다.
“밀주를 빚을 때 거르는 과정에서 술지게미가 남아요. 너무나 배가 고파 수시로 그 술지게미에 당원이나 사카린을 넣어서 데워 먹었어요. 술지게미를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당연히 술에 취하지만 워낙 배가 고프니 먹을 수밖에 없었죠. 특히 아침에 그걸 밥 대신 먹고 학교에 가면 술 냄새가 돌아 선생님께 얻어맞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지요. 집엔 거짓말하고 학교를 안 나가기 시작했어요.”
어머니 몰래 무단결석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자연스레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됐다. 아이들을 때리거나 돈을 뺏고 소매치기를 하는 등 비행을 일삼았다. 얼마 안 돼 발각된 그는 모친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불교신자인 모친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은 교회였다. 억지로 끌려 간 그곳에서 그의 방황은 끝이 났다. 주일학교 여 선생님에게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그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
어릴 적부터 쌓아 온 신앙은 이후 사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세상으로 외도한 이 이사장을 죽음의 수렁에서 다시 살리고 삶을 지탱시킨 힘이 됐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이 이사장은 하늘이 준 사명으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한 사람의 사명감은 지난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쌀을 보냈고, 따뜻한 밥 한 끼로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피우는 홀씨가 되고 있다.

ⓒ 정경뉴스



‘I’에서 ‘WE’가 되기까지
“이제 우리사회는 차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뜨겁지도 않지요. 미지근한 상태에서 따뜻함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직은 기부문화가 멀었다는 이야기예요. 기부문화가 성숙해야 뜨거운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냉랭하고 싸늘하던 사회가 따스해져 가고 있으니 많이 좋아진 거죠. 그에 따른 훈훈한 미담이 이제는 많이 들려오고요. 발전이 있다는 거, 얼마나 희망적입니까.(웃음) 도산 안창호 선생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기를 주창했어요. 바로 기부문화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에요. 기부는 나눔이에요. 또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예요. 기부와 나눔, 배려는 사랑 없이 힘들어요. 사랑하면 무엇이든 주고 싶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면 알 수 있죠.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헐뜯고 모함하고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가죠.”
이 이사장은 사회를 얼음처럼 차가운 사회, 따뜻한 사회, 뜨거운 사회의 3단계로 구분했다. 그는 나밖에 모르는 ‘I’의 1인칭 사회는 후진국, 너도 아는 ‘YOU’의 2인칭 사회는 중진국, 우리를 아우르는 ‘WE’의 3인칭 사회를 선진국으로 표현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은 1인칭 ‘I’에서 2인칭 ‘YOU’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나눔과 배려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국민의 약 1%만이 이 귀한 특권을 행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특권을 행하는 국민의 퍼센트는 높아진다. 그 뒤에는 특권을 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NGO와 NPO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한편 최근 NPO와 NGO 단체들의 도덕성 문제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기업화돼가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작 시민들에게서는 멀어지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 또한 비탄을 금치 못했다.
“NGO나 NPO들이 본연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객이 있어야 기업이 있는 것처럼 NGO나 NPO, 그 외의 어떤 단체도 국민이나 정부를 외면한 채 존재할 수 없어요. 최고의 가치관으로 둬야 할 것이 순수성이라면 활동 목표는 오직 국가나 국민이 행복하도록 편안하게 보살피고 사랑하는 겁니다. 국가나 국민을 망하게 하자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국민과 국가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단체는 올바른 조직체가 아닙니다. 이런 불순한 의도의 단체는 절대 태동되지도 탄생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회·시민단체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에게 버림받는 단체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서로의 목소리를 취합해 함께 나아가야 할 시점에 목소리만 높이는 단체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뿐이다. 사회·시민단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WE’라는 개념으로 순수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 이사장은 시민들이 외면하고 점점 배타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일부 사회단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내 목소리를 ‘WE’의 목소리로 착각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WE’의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무릎 꿇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어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오늘 하루도 굶주림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은 길바닥에서 자도 괜찮지만 겨울에는 노숙인이 얼어서 죽어 나가요. 지난 12월과 1월 서울역에서 2명, 영등포역과 광명시의 화장실에서 1명씩 죽었어요. 노숙인들이 그렇게 얼어서 죽어 가요. 그런 사람들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나 옷 한 벌, 아니 동상을 막을 수 있는 양말 한 켤레라도 신겨 줄 수 있는 시민단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이사장에게 듣는 노숙인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벌써부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아직도 눈에 선한 친구가 있어요. 당시 29살인 그 청년은 모 법대를 졸업 후 고시공부를 하다가 정신에 이상이 생겼어요. 결국 노숙인이 돼 서울역에 나왔지요. 1월에 떡국을 대접하는데 그 친구가 얇은 스웨터 한 장 걸치고 온 몸을 떨면서 왔더라고요. 큰 냉면그릇에 담긴 떡국에 코가 뚝뚝 떨어지는데….(울음) 떡국을 먹는 동안 밥차에서 옷을 한 벌 꺼내 그의 어깨에 덮어줬어요. 갈 때 옷을 뺏기가 뭐해서 입고 가라고 줬는데 그 다음 주에 안보이더라고요. 알아보니 얼어서 죽었대요. 119에 실려 갔는데 결국….(울음)
인터뷰는 한동안 중지됐다.

민들레 홀씨처럼, 물처럼 사는 대한민국 되길

ⓒ 정경뉴스

“제가 존경하는 땅콩박사 조지 워싱턴 카버는 세상을 위해 발명을 많이 했지만 단 하나도 특허를 내지 않았어요. 하나만 특허를 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는 데도 말이에요. 오히려 카버 박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내게 무료로 주셨는데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하셨죠. 그 분은 무소유의 삶을 살았어요. 평생 양복 한 벌 입고 살 정도였죠. 카버 박사의 100분의 1만이라도 흉내 내는 삶을 살고 싶은데 많이 부족하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 이사장은 카버 박사와 마찬가지로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면 무소유로 떠나야 해요. 모든 것은 다 사회가 주인이죠. 모든 것을 사회에서 만들었으니 사회에 되돌려주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자기 소유라고 착각하면 그게 욕심으로 변색돼요. 저는 집도 차도 없어요. 시민운동가여서가 아니에요. 무소유, 그것이 참 인간다운 삶이거든요. 하지만 가족들의 희생이 따르죠. 특히 나눔의 삶을 살면서부터 저에게 가족은 아예 뒷전이 됐어요. 내 가족한테는 못해요.”(웃음)
이 이사장은 아내 이정숙 여사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가족들은 그의 가장 큰 후원자이다. 두 자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비를 대 주었고, 이 여사는 빨간 밥차의 총괄을 맡아 책임지고 있다. 한 번도 이 이사장이 하는 일에 대해 말을 꺼내거나 반대하지 않았던 고마운 가족들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내게 용기를 주고 겸손하게 나를 순종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팔불출이라고 욕하겠지만 나는 우리 아내를 일류 석수장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덜 다듬어진 돌을 예쁘게 잘 다듬는 일류 석수장이요. 저를 이렇게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돌, 보석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 고맙고 감사해요.”
이 이사장은 각박한 세상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민들레 홀씨처럼, 물처럼’ 살기를 희망했다. 잡초처럼 밟히면서도 민들레 홀씨는 자기 몸을 멀리 날려 세상에 꽃을 피운다. 자기 희생을 통해 큰 나눔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물은 어떤가. 동그란 통에 담으면 동그랗고 네모난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된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 주는 것이 물이다. 또 막으면 돌아가고 땅 속으로 스며들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은 온 세상에 생명력을 주는 위대한 힘을 지녔다.
“우리 국민들은 순수하지만 위대합니다. 국가의 재난 앞에서는 하나가 됐고, 장롱 깊숙이 있던 반지와 팔지를 모아 위기 속에서 나라를 살렸습니다. 나도 당신도 ‘WE’ 속의 한 명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민들레 홀씨처럼, 물처럼 사는 우리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경뉴스

인터뷰를 마치자 어디론가 급하게 향하는 이 이사장과 동행했다. 도착한 곳은 서울역 근처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리에 앉아서 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소외된 이들의 모습. 제대로 씻지 못했을 그들의 행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시큼한 냄새도 진동했다. 급식 시간인 오후 1시가 되자 이 이사장의 대표 식사기도로 급식이 시작됐다.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밥을 받는 노숙인들의 모습에 조금은 놀라웠다.
이 이사장과 기자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새싹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그들에게 이 이사장은 따스한 말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한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랑이다. 그리고 홀로 외롭게 그 사랑을 전하고 있는 이 이사장이 희망릴레이 세 번째 주인공으로 선택된 것은 당연했다.
“부족한 저를 세번째 희망전도사로 추천하고 인터뷰까지 하니 송구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너무도 부족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하라고 채찍질하는 의미로 깊이 새기겠습니다.”
희망릴레이 주인공에 선정된 것이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천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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