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했듯이,“의로움을 보고도 실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과 같이 용기란 과감히 실행함으로써 더욱 커지며, 공포 또한 머뭇거릴수록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위태로운 처지에 이르러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용기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입만 살아서 큰 소리 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행동이 따르지 않는 용기란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행동할 때보다도 입으로 떠벌일 때가 더욱 대담해지는 법이지만, 참된 용기에는 행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한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 빛나는 보안관인 와이어트 아프는 약관 19세 때에 2인조 흉악범과 3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권총을 겨눈 채 마주서게 되었다. “두 놈 모두 총을 버리고 손 들어! 체포하겠다.”기분 나쁜 정적이 흐르는 몇초 사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살기가 등등했다. 서로 마주 서 있는 그들 사이에는 금방 권총 소리가 요란하게 날 것만 같았다. 5초, 그리고 10초, 시간이 흐르는데, 드디어 흉악범 가운데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알았어, 젊은이. 자네 말대로 하겠어,” 마흔 명 이상이나 사람을 죽인 최대의 살인마라고 할 수 있는 그들 흉악범이 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쉽게 체포되어 버렸을까. 후일 2인조 흉악범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노상에서 아프와 마주섰을 때 솔직한 이야기지만 손발이 꽁꽁 묶인 것 같이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단 말이야.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 녀석 기백에 그만 압도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꼴이 됐다네.”
진리는 강하다. 그것은 행동이 따르면 정의로 변한다. 용감한 사람은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하여 사회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식이 지배하는 속세의 사람들에게는 정의가 주는 사랑이란, 부정을 못 본체하고 넘기는 공포심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의로움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버린다. 그것은 마치 바람 부는 것을 걱정하는 자가 씨앗을 뿌리지 않고 나무도 심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러니 백 년을 양과 같이 순하게 살기보다는 하루라도 사자와 같이 용감히 사는 쪽이 사나이 인생으로는 더욱 훌륭한 것이 아닐까.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 용기 있는 자에게 손을 뻗는다는 것을 믿고, 사나이라면 의로움을 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은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몸을 위험 속에 내던질만한 용기를 갖지 않고서는 행복이나 자유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