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는 그가 설계도나 풍경화를 잘 그리는 것 보고 정원을 가꾸는 훈련을 받게 했다. 그는 도제 살이를 하는 동안 매주 이틀씩 밤을 새며 공부했고, 낮에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야간 학습을 통해 프랑스어를 배웠고, 18세가 되기 전에 백과사전에 들어가 원고를 번역했다. 그는 20새 때 조경사로 일하며 노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난 이제 20세이다. 벌써 내 인생의 3분의 1이 지나갔는데 나는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놓았단 말인가?”
그는 프랑스어 다음으로 독일어에 눈을 돌려 곧바로 그 언어를 마스터했다. 이후 커다란 농장을 구입하여 농업 기술 분야에 스코틀랜드식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오래잖아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데 성공한다. 전쟁이 끝나고 대륙의 통행이 자유로워지자 그는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다른 나라의 원예와 농업 문화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여행을 한 뒤 그 결과물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담아냈는데 이는 견줄 자가 별로 없을 만큼 부지런한 노력으로 이룩한 주목할 만한 저작물로서 엄청나게 많은 해당 분야의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