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사는 고마운 사람 중에서 그 으뜸은 남편에게는 아내요 아내에게는 남편이다. 많은 부부들이 늘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배우자의 고마움을 다독거려 주고 보듬어 주지 않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긁어대는 부인의 바가지로 인해 노이로제에 걸린 남편이 있었다. 어찌나 바가지가 심하던지 집에 들어오기가 싫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부인이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죽으면 바가지 긁는 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짧은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로 씨가 되어 버렸다. 부인이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평생 동안 누워 있어야 하는 비극이 찾아오고 말았다. 부인이 자리를 깔고 누우면서부터 지독한 바가지는 사라졌지만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식사며 청소며 빨래며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부인 대신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까지 떠맡은 그는 죽을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해서 파출부 아줌마를 불렀지만 그래도 집안 꼴은 나아지지 않았다. 엉망인 집안 꼴을 보며 그는 부인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뼈저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인이 바가지를 긁어댔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마치고 밤 늦게서야 부인 옆으로 돌아온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여보, 빨리 털고 일어나 바가지 좀 긁어요. 예전과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제발 나에게 바가지 좀 긁어요. 당신이 이렇게 힘없이 누워 있으니까 나도 힘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