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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보청기 (06/10 ~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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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구의 행복비타민 3708회차

2015.06.10(수)

어머니의 보청기

시끌벅적하던 존슨의 집이 갑자기 고요해진 것은 그의 어머니가 보청기를 착용하게 된 후부터였다. 전에는 어머니가 찬장 문을 여닫는 소리, 냄비 부딪히는 소리 등에 온 식구들의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특히 식탁 위에 접시를 내려놓을 때 그 유리접시들이 식탁 유리에 닿으며 내는 마찰음은 정말 견디기 힘든 소음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칠판에 분필을 그어대는 소리와 거의 흡사하여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소음들은 모두 사라졌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실 때조차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어머니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처음 착용한 후 병원 문을 나서며 갑자기 역정을 내셨다.
“얘야, 어쩜 저 차들은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거니?”
집에 돌아온 뒤로 어머니의 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어머니는 갑자기 식구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불만을 나타내셨다. 심지어는 전화 벨 소리와 재채기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시곤 했다. 보청기를 착용하기 전에는 혹시 전화 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무선전화기를 침대의 베개 아래에 두고 사용하셨던 적도 있었는데 이젠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또, 전에는 집으로 찾아온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제발 소리를 지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게 되었다.

더욱 신기한 일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는 것이다. 목청이 컸던 어머니는 갑자기 마치 무슨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기라도 하듯이 개미처럼 작은 소리를 내셨다. 또한 어머니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지시며 농담조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셨다.
“너희들 앞으로 몰래 엄마 흉을 보았다가는 큰일 날 줄 알아.”
사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데이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착용한 이후로 방문을 닫고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까지 전부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귀는 말이야, 젊은 너희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단다. 보청기를 조금만 크게 작동시키면 아마 천리 밖에서 아기 우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을걸.”과연 보청기의 성능은 놀라웠다. 어느 날 어머니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지나가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그녀의 며느리가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에 일일이 맞장구를 지쳤다. 어머니는 멀리서도 그녀들의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던 과거에 어머니는 상대방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만큼 귀가 어두웠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청력은 놀라울 만큼 좋아져서 시력만 더한다면 거의 초능력 여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보청기가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오른쪽 귀에만 착용하고 있어서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로 착각하곤 하셨다. 그리고 오른쪽 귀가 너무 민감해지는 바람에 왼쪽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어머니는 뒤뜰에 나가서 정원을 손질하다가도 종종 주위에서 작은 새들과 매미 따위가 내는 소리에 사방을 두리번거리곤 하셨다. 거리를 걷다가도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놀라서 허둥대며 이리저리 피할 궁리부터 하셨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착용한 이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어떻게 차와 부딪치지도 않고 용케 잘 살아왔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세상이 이렇게 소란스러웠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는 거야.”

당신도 혹시 이 세상이 소란스럽다고 생각하나요? 만약 전혀 소란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신 자신이 소음의 최대 근원지일 수도 있습니다. 일상이 따분하며 무미건조하다고 불평하는 당신이라면 혹시 삶의 섬세한 파편들을 음미하는 정서가 메말라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한번 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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