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로는 정승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 간사스럽고 탐심이 많아 얼굴빛이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변하였다. 호아침이 충청병사忠淸兵使가 되어 참깨 20말을 안로에게 보냈다. 그 후 벼슬의 임기가 다 되어 돌아와 첫새벽에 안로의 집에가서 명함을 들여보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침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 피로하였으나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었다. 한나절이 지나자 임천손이 또한 충청수사忠淸水使로 벼슬이 갈려서 왔다. 명함을 들여보내닌 안로는 곧 청사에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침도 따라서 들어갔다. 안로는 천손을 향해서는 정답게 웃고 말하며 흡족히 여기는 기색이 있었으나 침에게는 쌀쌀맞게 대답하고 한 마디의 위로의 말조차 없었다. 그 후에 침은 총부의 부총관으로 가게 되었고, 천손도 삼청위장三廳衛將으로 가게 되었다. 침이 맞이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전에 정승이 그대를 대하는 모습이 은근하던데 그 이유를 말해 주시오. 숨김없이 말해 주길 바라오.” 멋쩍어하던 천손이 마침내 웃으면서 털어놓았다. “내가 수영水營에 있을 때 정승이 혼숫감을 요구하기에 큰 나무를 베어서 배를 만들고 소용되는 일체의 물건을 가득 실어서 배 째로 보냈는데, 반드시 그 때문일 것이오.” 침은 손뼉을 치며 뒤로 넘어졌다. “나의 참깨 스무 말은 큰 바다에 돌을 던진 격이었네 그려!” 너무 사소한 물건이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