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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7회]개인적인 이득을 떠나야 위대한 성과가 나온다. (01/09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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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득을 떠나야 위대한 성과가 나온다.

발명가들의 순교 기록을 적는 일. 그러니까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 시대의 산업 발전에 기여한 걸출한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한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흔히 천재들은 자신들이 심은 나무의 열매를 거두는 일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수많은 기계 발명가들이 극복해야 했던 고난과 가난의 사례로서 한 발명가의 인생사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소면기(섬유를 풀고 빗질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기계-역자주)의 발명자인 하일만(Joshua Heilmann)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일만은 알자스 주 면직 산업의 중심지인 뮐루즈(Mullhouse)에서 태어났다. 부친 역시 면직업을 했기 때문에 그는 15세에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며 남은 시간에는 기계 제도에 취미를 붙였다. 낮에는 파리에 있는 삼촌의 은행에 가서 일하고 저녁에는 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발명품 중 하나인 20여 개의 바늘이 동시에 움직이는 자수기는 6개월의 고생 끝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1834년 박람회장에 출품된 그 기계는 그에게 금상과 함께 레지옹 도뇌로 훈장을 안겨주었다. 그의 손에선 다른 발명품들도 만들어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인 것은 소면기이다.

 

기존의 평범한 소면기(카딩 머신)는 원료의 낭비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알자스 주의 면방적업자들은 개량된 소면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상금으로 5,000프랑을 주겠다고 했고, 하일만은 그 즉시 기계 개발 경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가 돈을 바라고 그 일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유한 아내 덕분에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일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없다.”

그의 왕성한 추진력은 결코 억누를 수 없는 발명가로서의 본능이었다. 자기 앞에 문제가 던져지면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본능 말이다. 하지만 개량 소면기의 개발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세심한 연구에만 수년이 흘렀고 연구 개발 비용은 아내의 재산을 바닥내고 말았다. 그는 제품을 완성시키지도 못하고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하일만의 아내는 계속되는 가난과 고난 속에서 남편을 폐인으로 생각하면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벽난로 앞에 앉아 발명가들의 고난과 그들의 가족이 처하는 불운을 생각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딸이 긴 머리를 손가락 사이로 쭉 빼서 빗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순간, 빗으로 긴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고 짧은 머리카락은 다시 되돌려 빗어 올리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일만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겉보기에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실제로는 지극히 복잡한 기계식 빗질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발명품을 완성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기계가 작동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웠다. 그 기계는 거의 사람의 손가락처럼 섬세하게 작동하는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면섬유를 빗질하여 평행으로 가지런히 배열하고 그 긴 섬유와 짧은 섬유를 구분하여 각기 따로따로 섬유 뭉치를 만든다. 그 기계는 손가락의 섬세한 정확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세심한 지성을 반영한 것이다. 하일만 소면기의 주된 상업적 가치는 평범한 면사로 고급 방적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일만식 소면기는 1파운드짜리 면섬유에서 최대537킬로미터의 가는 실을 뽑을 수 있다. 그걸로 고급 레이스를 만든다면 1실링짜리 원면이 소비자의 손에 넘겨질 때 최대 400파운드가 되는 셈이다.

 

영국의 면방적업자들은 하일만 소면기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랭커셔의 6개 회사가 힘을 합쳐 거액을 주고 영국 내의 특허권을 사들였다. 그들은 그 공정을 양모에도 적용하기 위해 같은 액수를 지불했다.

마침내 가난한 하일만에게 뒤늦게 부가 찾아왔지만 그는 그것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오랜 수고 끝에 성공을 거두기가 무섭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함께 고생해 온 아들 역시 얼마 살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갔다. 오늘날의 경이적인 문명은 바로 이러한 희생의 대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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