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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1회]캥거루와의 약속 (11/19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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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와의 약속

그해 여름 우리는 산림청으로부터 임야를 사서 목초지로 바꾸기 위해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렸다. 카빌라라는 이름의 이 땅은 해발 12백미터 높이에 있었으며, 한 쪽 방향으로 북쪽 해변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자연 경관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은 삐죽삐죽 솟아오른 높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의 목장과 한쪽 끝이 맞닿아 있는 카빌라는 주변이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우거진 삼림이었다. 따라서 목초지로 개간한 뒤에도 카빌라에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한동안 토질을 개선하고 거름을 실어 날라도 카빌라는 내가 기대한 것만큼 풀이 자라 주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숲의 야생 동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풀들의 상당량을 먹어 치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밤 지켜 본 끝에 놀랍게도 거대한 캥거루 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목장을 보호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일주일에 이틀 밤씩 캥거루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그것이 매우 끔직한 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대신 그 잔인한 일을 맡겼다. 주민들은 고기도 얻을 겸 사냥하는 재미도 즐길겸 얼른 그 일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것도 별 성과가 없었다. 목초지는 겨우 서른 마리의 소들을 들여보낼 수 있을 만큼 밖에 풀들이 자라지 않았다.

 

다른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래서 또다시 직접 야간 사냥에 나선 어느 날, 자동차 헤드라이트 속에 들어온 커다란 캥거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는 재빨리 총을 들고 뛰어내렸다. 내가 총을 겨눴을 때 캥거루는 단지 열 걸음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캥거루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강렬한 자동차 불빛을 받아 붉은색 보석처럼 변한 캥거루의 두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꼼짝 않고 서서 아름다운 야생 동물의 영혼을 응시했다. 오랫동안 우리의 시선이 그렇게 서로에게 못박혀 있었다. 그 동물은 서서히 고개를 돌리더니 조용히 풀을 뜯기 시작했다.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딘가 내 안 깊은 곳에서 강한 자비심이 일었다. 농사의 실패를 눈앞에 둔 농부에게 자비심이란 사실 흔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총을 내리고 지프차로 돌아갔다.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만 했다.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이런 식으론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음을 난 알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카빌라의 언덕 지대로 차를 몰고 가서 방목장 한가운데 있는 몇 그루의 나무 근처에 멈췄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캥거루들과 대화할 준비를 갖췄다.

 

나는 마음속에 생각해 둔 내용들을 하나씩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바보가 된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았지만, 스스로 확신을 갖고자 노력했다. 어디선가 내 말을 듣고 있을 지도 모를 캥거루들을 향해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너희 캥거루들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너희들에게 한 가지 타협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난 너희들에게 내 목초지에서 더 이상 풀을 뜯더먹지 말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하며 다시는 아무도 너희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땅을 너희들과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방목장 부근에서는 마음껏 풀을 뜯어먹도록 해주겠다. 하지만 방목장 안으로 스무 걸음 이상 들어와선 안된다." 이렇게 발표하고 나서 나는 기대를 갖고 잠시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한 말들만 머릿속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장 출입문을 잠그고 사냥꾼들에게 더 이상 내 땅에서 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나를 정신나간 사람처럼 쳐다보면서도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불과 몇 주일 만에 목초지의 풀들이 빽빽하게 자라기 시작해서 열 마리의 소와 송아지들을 더 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황은 점점 더 좋아졌다. 머지않아 나는 카빌라에 아흔 마리의 소들을 넣을 수 있게 되었고, 토끼풀이 지천으로 자라났다.

우리가 이 불확실한 약속을 지켜가는 3년동안 목초지는 말할 수 없이 풍요로운 땅이 되었다. 풀들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면서 여기저기 캥거루들이 지나간 자국이 나타났지만 캥거루들은 목초지의 경계선 부근에서만 풀을 뜯었다. 물론 내가 정한 스무 걸음에 대해선 서로가 기준이 달랐다.

보폭이 큰 캥거루들에게 스무 걸음은 내 기준으로는 마흔 걸음 정도는 되었다. 어쨌든 캥거루들은 그 이상은 목초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소원을 그 야생 동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며, 서로의 이익을 위해 타협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생명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나는 알았고, 자연과 협력하는 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해 뒤 우리는 목장을 팔고, 카빌라는 새로운 목장주가 이사 오기까지 2년 동안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에 주민들이 자물쇠를 열고 들어와 몰래 사냥을 시작했다. 목장을 팔고 나서 3년 뒤에 내가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목장주가 카빌라에 풀이 자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카빌라를 떠날 때 그 곳엔 토끼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었는걸요." 목장주가 말했다.

"글쎄요. 하지만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장주의 설명은 이러했다. 카빌라를 구입하고 나서 2년 뒤에 그곳에 와보니 온통 캥거루 천지였다. 주민들은 그 2년 동안 캥거루를 무려 6천 마리나 사냥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난 캥거루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음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냥이 다시 시작되자 캥거루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6천마리나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목초지를 휩쓸어 버린 것이다. 난 충격을 받았고, 죄책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새 목장주에게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내가 캥거루와 한 약속에 대해 그에게 말한다 한들 그가 믿어 주기나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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