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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1회]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 (01/08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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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

1789년 프랑스 의회는 국왕 루이 16세에게 의회에 출두하여 서정쇄신에 대한 공약을 하라고 촉구하였으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는 17919월 의회의 끈질긴 요구에 굴복하여, 봉건제를 철폐하고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였으나, 실질적인 개혁에 비협조적이고 오히려 의회 내의 왕정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누적된 사회문제, 부정부패, 국제적 전쟁때문에 도탄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1793년 의회는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기 위하여 공화정을 선포하고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아네트를 길로틴이라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고, 이로써 프랑스 혁명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길로틴과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인 길로틴은 프랑스 사람 길로틴이 사람의 목을 빠른 시간 내에 자를 수 있게 고안한 것으로, 그는 기계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나, 자신도 길로틴에 의해 목이 잘리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하여간 누적된 부정과 부패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방법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잡자 서정쇄신이라는 명목으로 수천 명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의 철권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인 정치행위는 더욱 큰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와 민심의 이반을 일으켰고, 그 역시 1794년에 길로틴에 목이 잘렸다. 길로틴에 목을 대고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천명의 생명을 무참하게 죽인 자신의 잘못을 신에게 용서를 구하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고 지금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새겼을까?

프랑스는 그가 처형되고 난 후 일종의 회복기에 들어갔지만 그가 남긴 악의 씨앗은 향후 25년간 치료할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가 죽고 난 후 프랑스 정치는 음모와 중상모략이 판을 치며 더욱 부패되어 갔고 날마다 팽창하는 통화는 누구도 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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