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申采浩) 그는 구한말 국운이 다할 때이다. 그는 민족혼을 부르짖어 일깨운 언론인이요, 사학자였으며, 불굴의 독립정신으로 구국항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 운동가이다. 왜경에 붙들려 9년 형기 중 마지막 1년을 남기고서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57세의 일기로 수인번호 411을 때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신채호에 대한 짧은 일화를 하나를 소개하겠다. 춘원 이광수가 그가 세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이하게 그는 서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무슨 세수를 이 모양으로 하는가?” 춘원이 물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허리를 굽히면서 세수를 하게 되어 있소? 나는 허리를 굽히고 살기는 싫소. 일본 놈들이 판을 치는 이 판국에 허리를 굽히다니…. 그 놈들이 망하기 전까지는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단재의 대답이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단재의 항일투쟁 정신이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한다. “사나이 한 평생에 송장처럼 살아서야 되나? 살아서는 시끄럽게 살다가 죽을 때는 고요하게 죽어야재….” 아닌게 아니라 그는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었다. 그는 “일황의 신민이 될 수 없다.”면서 호적없이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일본 관헌들은 매장허가를 해 주지 않아 유해마저 묻힐 곳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배짱이 있는 한국 면장에 의해 야산 기슭에 암장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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