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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세 홍보대사]기독신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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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2-27 00:00 조회1,1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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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드리블’ 아프리카 누비는 청년 키운다


걸출한 지도자·성공한 사업가 생활 접고 2007년 남아공에 홀로 축구선교사로 떠나
오갈 곳 없던 아이들 모아 팀 구성, 희망 심어…20여 나라 찾아 순회 지도자로 활동
“오랜 내전 상처로 신음하는 남수단 축구 통해 치유, 복음 일꾼 육성하는 게 지금의 꿈”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축구 이야기였다. 그 다음이 전문인 선교사가 파송돼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남수단에 지금 필요한 것은 축구공 1만개”라고 선언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총회세계선교회 임흥세 순회선교사는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축구 전도사’다. 그가 살아온 60평생 중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아마 축구선수로서 화려한 경력이 있었다면, 그는 선교사는 커녕 축구지도자와 인연을 맺지도 못한 채 살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선수로서 무명이었기 낮은 생활을 배우고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한 삶이 기초가 되어 축구지도자가 되고 선교사도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임흥세 선교사는 축구지도자로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축구 감독으로 와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미 지도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남수단에서도 축구 총감독을 넘어 올림픽조직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기서 그를 부르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는 축구감독이었다. 1978년 성수중학교 축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1992년 태국에서 열린 유소년 축구대회 코치로 참석, 우승까지 일궈냈다. 웬만한 사람도 다 알지만, 성수중학교 김주성, 광희중학교 홍명보, 광운공업고등학교 하석주 선수 등을 배출한 걸출한 감독이었다. 거기다 한국축구협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가 국내에서 27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길러낸 축구선수 중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만 4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아내와 함께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스포츠용품업을 하며 사업가로서도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다. 그러던 중 그는 혼자서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축구선교사로 떠났다. 모두가 놀랐다. 의외였다.
“결혼식 때 예물과 예단을 당시 다니던 삼일교회 선교부에 몽땅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장로가 되면 5년을 시무하고 선교사로 나가겠다’, ‘11명의 국가대표를 키우고 싶다’, ‘태극마크를 단 지도자가 되고 싶다’ 등의 세 가지 서원기도를 하며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그래서 51살의 나이에 축구선교사로 남아공을 찾았다. 거기서 그는 에이즈 축구단, 교도소 축구단, 고아원 축구단, 거리부랑자 축구단 등을 만들어 희망을 심어줬다. 축구는 아이들에게 꿈이었다. 무슬림 어린이가 돌아오고, 교도소에 들락거리던 아이가 새 삶을 찾기도 하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회복되기도 했다. 임 선교사는 비록 경비가 1억 5000만원이나 소요되었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축구대회에 남아공 아이들을 출전시켜 더 큰 비전을 심어주기도 했다. 제자인 전 국가대표 홍명보 감독이 현지에 축구장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했던 35년 전을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고 남아공을 떠나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생각되는 남수단으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남수단은 56년간 내전을 겪어 피폐하기 그지없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각종 지하자원과 천혜의 부존자원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전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나라다. 오죽했으면 UN에서조차 이 땅에서 인간이 살기에 가장 힘들다고 했을까? 전쟁고아 160만 명, 게다가 유아와 아동사망률은 40%에 달했다. 그래서 인구의 80%가 18세 미만이다.

그는 이태석 신부가 순교한 남수단 톤즈에서 마약과 술로 쪄들어 사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다. 20개의 팀을 만들어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이어갔다. 축구와 함께 태권도연맹도 설립하여 아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건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차근차근 기틀을 닦았다.

“2010년 런던올림픽 때, 미국 애리조나에 있던 난민 구르오 마리오라는 청년이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올림픽에서 남수단 대표로 뛰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재차 편지를 보낸 끝에 남수단 국기 대신 오륜기를 달고 활약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며 남수단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등록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남수단에서 활동을 할 즈음 임 선교사는 교통사고 후유증과 요로결석 치료차 귀국하여 건강진단을 받던 중 위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위내시경 검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검진을 받았는데 위암초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위를 절제하자 했지만, 어느 의사가 시술을 해보자고 권유를 하는데 이상하게 끌리더라구요. 그래서 시술을 선택했는데 결과가 좋아 2년간 아무 사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수술을 했다면 아프리카에 다시 갈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는 남수단에 다시 돌아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남수단은 독립한지 고작 3년 밖에 되지 않아 스포츠협회가 구성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축구 태권도 농구 핸드볼 육상 유도 등을 정식으로 등록하여 지난해 7월, 남수단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사라예보의 탁구 주인공이자, 태릉선수촌장인 이에리사 회장이 직접 이곳을 방문하여 체육관을 지어주기로 약속도 했다. 총회세계선교회에서도 축구공 1만개와 축구용품보내기에 적극 협력키로 했다. 대한체육회와 체육진흥공단에서도 남수단에 물품을 후원키로 이미 결정했다. 그는 남수단 10개 도시마다 1개의 축구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아프리카에서 축구선수는 기를 수 있어도 축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젊은 청년을 발굴하여 한국에 있는 남양주FC학교에 보내 축구선교사로 육성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나라 주민에게 떡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주는 것이 더 역사적으로 소중하다고 봅니다.”
 

  
▲ 임흥세 선교사(오른쪽)가 글로벌미션축구학교 이승도 목사와 아프리카 선교의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54개국 중 현재 20개국을 찾아다니며 순회 축구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남수단을 베이스기지로 활용하여 휴가를 이용, 1년에 두 차례씩 남은 34개국을 돌면서 축구지도자와 선교의 역할을 병행하는 것이 그의 사역이다. 오는 3월에는 말라위에서 어린이 축구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케냐에서는 가수 김장훈과 함께 이미 5개 팀을 창단했다.

한편 임흥세 선교사는 남양주에 위치한 글로벌미션축구학교와 연결하여 아프리카의 젊은 축구 꿈나무를 교육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축구 플러스 알파가 더해질 것이다.

“축구공에 공기를 주입하여 뻥뻥 차면서 관심을 유도했다면, 이제는 아프리카에 성령의 바람을 패스하며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사진=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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