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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9-03-19 00:00 조회5,0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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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노점상 11명 매월 5만원씩 모아 어려운 이웃 지원
"빠듯한 살림살이라도 아껴 도울 수 있어 기뻐"
울산=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펑!"

뻥튀기 기계에서 뽀얀 연기가 솟았다. 하얀 뻥튀기가 우르르 쏟아졌다. 예닐곱 살짜리 꼬마들이 뻥튀기 장수 윤병태(50)씨를 에워싸고 일제히 "뻥! 뻥! 뻥!" 하고 고함질렀다. 참새 떼가 포르르 뛰어다니며 흰 쌀알을 쪼아먹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국밥집·곱창집·다세대주택·구멍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울산 삼호동 주택가에 5일장이 섰다. 장터는 동네 한복판에 있는 330㎡(100평)짜리 무료 주차장이다. 고소한 뻥튀기 냄새, 알싸한 장떡 냄새, 사과와 귤 향기가 물씬 풍겼다. 은갈치 비늘이 봄볕에 반짝거렸다. 만두와 풀빵이 더운 김을 뿜고 뻥튀기 기계가 뻥뻥 터졌다.

장바구니 든 동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상인 30여명이 저마다 좌판을 펼쳐놓고 목청껏 외쳤다. "딸기 맛 좀 보고 가이소!" "귤이 한 소쿠리에 4000원!" "통통하니 살 붙은 갈치가 억수로 맛 있습니더!" "물때 좋은 대구 들이가이소!"
이곳에 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8년 전부터다. 노점상 8명이 '길벗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동네 사람들과 협의해 매달 '2'자와 '7'자로 끝나는 날짜에 무료 주차장에서 5일장을 열고 있다.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하는 식이다.

길벗회 회원인 야채장수 안진범(39)씨가 "장사가 잘된다고 소문이 나서 우리 모임 회원 아닌 상인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길에서 만난 벗들'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들은 울산 곳곳에서 장사를 하다 만난 사람들이다. 지금은 회원이 11명으로 불었다.

이들은 매달 10일 1인당 5만원씩 돈을 걷는다. 총 55만원을 모아서 그 중 50만원을 어린이재단(회장 김석산) 울산지역본부에 기부하고, 나머지 5만원은 모아놨다가 2~3개월에 한번씩 '노인 무료 급식'비용으로 쓴다. 자신들이 파는 채소와 생선으로 반찬을 만들어서 김이 무럭무럭 솟는 쌀밥과 함께 장터에서 동네 노인들에게 공짜로 대접한다. 동네 아파트 부녀회 회원들이 요리를 거든다. 보육원에 들러서 쌀, 과일, 튀김 등을 주고 오기도 한다.
▲ 지난 12일 오전 길벗회 회원인 박성남(맨 왼쪽 앉은 사람·이후 왼쪽부터), 윤병태, 정동길(앉은 사람), 박은희, 안진범, 김민주, 이성락, 최동한씨와 이창섭 회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점상을 운영하는 이들은 매달 1인당 5만원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길벗회 이창섭(45) 회장은 고구마 장수다. 그는 "매일 단속반에 쫓겨 다니던 우리들에게 장터를 내준 주민들이 너무 고마워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묵고 살게 해줬으니 얼마나 고마운교. 우리도 받지만 말고 남을 도와 보자고 뜻을 모았십니더."

장터에 온 손님들이 "좌판 펴고 장사하는 처지에 무슨 여력이 있다고 다른 사람을 돕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 회장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솔직히 속상하니까 회원들 사이에서 '없이 사는 처지에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계속해야 하나'하는 푸념도 나온다"고 했다.

길벗회 회원들은 대부분 imf 위기 때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한 사람들이다. 12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아직도 한달에 100만~200만원을 벌어서 사글세 방을 전전하는 처지다.

길벗회 이 회장은 실내장식업체를 운영하다 imf 때 망했다. 이후 매일 새벽 부산 부전시장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120㎏씩 떼다가 울산 길거리에서 팔았다. 그는 "감자, 고구마를 더플 백 3개에 나눠 담아서 혼자 전철과 버스로 운반한다"며 "힘을 쓸 때마다 이를 악물었더니 이젠 고기처럼 질긴 것은 이가 아파 잘 못  먹겠다"고 했다.

만두장수 최동한(49)씨도 봉제공장을 하다 imf 때 망해 거리로 나섰다. 그는 "한때는 직원을 50명이나 뒀는데, 부도나고 나니 1t 트럭 한대가 달랑 남았다"고 했다. "매형이 권하는 대로 아내랑 둘이 트럭에 만두를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어요. 넥타이 매고 결재만 했는데, 길거리에서 만두를 팔자니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지요."

튀김장수 박성남(57)씨는 대형 백화점과 마트 등에 버스를 빌려주고 한달에 1000만원씩 벌다 사업이 망해 튀김 그릇을 들었고, 콩나물장수 박은희(여·47)씨는 남편의 양돈사업이 기운 뒤 3남매를 먹여 살리려고 이곳에 흘러들었다.

이들은 '사소한 절약'으로 한푼 두푼 남을 도울 돈을 모은다. 술·담배를 줄이고 단돈 100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다닌다. 어린이재단 직원 박구정(29)씨는 "길벗회 회원들은 지난 8년간 한번도 기부를 빼먹고 넘어간 달(月)이 없다"며 "자신들도 살림이 빠듯할 텐데 찾아가보면 다들 항상 웃고 있어 신기하다"고 했다.

튀김장수 박씨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두 아들에게 자장면 한 그릇 마음 놓고 못 사줬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못해 줘서 한이 됐거든요. 보육원에 가서 다른 아이들한테 베푸는 걸로 대리만족하는 거지, 허허."

콩나물장수 박씨는 3년 전 시장에서 5000원 주고 산 검정 바지에 큰딸이 고등학교 때 입던 낡은 체육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박씨는 "사치 안 부리면 한달에 5만원 모으는 건 쉽다"고 했다.

"없는 사람 마음은 없는 사람이 알지요. 헛돈 쓸 거 아껴서 동네 노인네들한테 따뜻한 밥 한끼 해 드리는 건데, 그게 뭐 대단한 선행이라고 서울서 기자 총각이 취재까지 왔나, 오호호!"
 
입력 : 2009.03.17 02:40 / 수정 : 2009.03.1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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