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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09-11-06 00:00 조회5,0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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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윤명숙 할머니맹학교에 5억원 기부
수집가였던 남편과 함께 일제때부터 골동품 모아
국보급 2개 발굴하기도…
"이제 살아봐야 1~2년… 어려운 이웃 돕고 갈 것"

3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아담한 2층 양옥(231㎡·70평)에 들어서자 40년 된 흑백텔레비전, 둥근 도자기와 소박한 다탁(茶卓), 가죽이 반질반질해진 소파 등 오래된 물건들로 꽉 찬 거실이 나왔다. 거실 한쪽엔 과일박스 수십 개가 차곡차곡 접혀 쌓여 있었다. 이 집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윤명숙(尹明淑·93) 할머니가 카랑카랑하게 말했다.

"문화재 수집가인 남편을 만나 한평생 골동품 수집만 하고 살았더니 필요 없는 물건도 잘 못 버리겠어요. 허허."

윤 할머니는 이름난 고미술품 전문가였던 고(故) 김동현(金東弦·1910~2002)씨의 부인이다. 김씨는 삼국시대 불상부터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까지 고미술품 400여점을 수집했던 컬렉터다. 남편과 함께 한평생 고미술품을 모은 윤 할머니도 남다른 안목의 감식가다.

그런 윤 할머니가 '점자의 날'인 다음 달 4일, 집 근처 국립서울맹학교에 5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 학교 이석진(53) 교장은 "매년 형편이 어려운 초등학생 2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 1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는 데 쓰기로 했다"며 "문화재 수집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 기부한 돈인 만큼, 더 소중하게 쓰겠다"고 했다.

서울 국립맹학교에 5억원을 기부한 윤명숙 할머니(앞줄 가운데)가 3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이 학교 교정에서 시각장애 학생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이신영 기자

작고한 남편은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지을 때 땅속에서 오래된 활촉 같은 것이 나오면 모아뒀다가 골동품 가게에 달려가 팔 정도로 수집하는 걸 좋아했다. 부부는 1945년 해방 전까지 평양에서 골동품 가게를 꾸렸다.

1940년 어느 날, 가게에서 부리던 인부가 "우물 파다가 이런 게 나왔다"며 오래된 금동불을 가져왔다. 윤 할머니는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아, 쌀 한 말이 1원 할 때 6000원 주고 그 불상을 샀다"고 했다.

그 불상은 4세기 말~5세기 초 유물로 추정되는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이었다. 한국·중국·일본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불상 중 하나다. 부부는 불상을 마당에 묻어뒀다. 작고한 김씨가 은밀하게 친구를 불러 불상을 보여주고 평(評)을 구했는데, 그만 이 일이 소문나 일본인 평양박물관장 귀에 들어간 것이다.

윤 할머니는 "일본 관리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박물관에 넘기라'고 했지만, '일본인 손에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버텼다"고 했다.

광복 직후 부부는 유물을 품에 안고 공산당을 피해 월남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남편이 남들로부터 감정 의뢰를 받은 골동품을 앞에 놓고 진품인지 가짜인지 찬찬히 살펴볼 때마다 윤 할머니가 남편 옆에서 플래시를 들고 불을 비췄다.

"남편이 '졸지 말라'고 할 때면 '시집 온 것 후회된다'는 생각도 들었지. 매일 새벽까지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안목이 생긴 거야. '아, 이건 진품이구나!'라고 골동품 볼 줄 알게 됐어."

1946년, 한 지인이 "반가사유상의 광배(불상 머리 부분에 달린 후광)와 대좌(불상 받침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평양에서 발견됐다"고 알려줬다. 유물을 구하러 월북했다가 공산당 관리들 손에 붙잡히면 "귀한 유물을 가지고 월남했던 반동"으로 몰려 큰 변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윤 할머니는 남편에게 "당신은 남자라서 붙잡히면 죽지만, 난 여자라서 용서받을지 모른다"고 하고 혼자 평양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유물을 구했지만, 부부가 찾아 헤맨 유물이 아니라 다른 불상에 딸린 유물이었다. 윤 할머니는 낙심했지만, 무사히 서울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1950년 6·25가 터졌다. 전쟁이 끝난 뒤 윤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여러 박물관·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소장품의 가치를 감정하는 전문가로 활동했다. 부부의 수집품 가운데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에 이어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85호)도 국보로 지정됐다. 부부는 1982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국보·보물급 문화재 10점을 호암미술관에 양도하고 총 52억원을 받았다. 이후 부부는 골동품 수집을 그만두고, 옥인동 집에서 호젓하게 지내왔다. 김씨가 작고한 뒤로는 윤 할머니 혼자 살았다. 조카며느리 이경자(48)씨가 매일 평창동 자택과 옥인동 윤 할머니 집을 오가며 윤 할머니를 보살폈다.

전쟁 통에 아이들과 헤어진 뒤 다시 못 만나게 된 것이 윤 할머니의 평생 한이었다. 기부를 결심한 건 두 달 전 조카며느리 이씨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다 맹학교 학생들을 봤을 때였다. 할머니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남을 돕지 않고 나만 잘살아왔다'는 자책이 들던 참이었다"고 했다.

"내가 아흔이 넘었어도 골동품 일을 해서 그런지 눈이 아직도 선명해. 그런데 10살짜리 아이가 지팡이도, 안내견도 없이 길거리를 다니더라고.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못 보는 아이들을 돕기로 했어요. 이제 살아봐야 1~2년일 텐데, 그때까지 남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 돕는 데 쓰고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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