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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취객 구하려다 식물인간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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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9-12-31 00:00 조회4,5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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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사경 헤매는 전직 경찰관 최종우씨
최형사가 남몰래 도왔던 사람들의 작은 정성 이어져

[조선일보]

 

"올 한 해도 고생 많았어요. 여보, 내 말 들려요?"

27일 오후 충북 진천군의 현대병원. 부인의 물음에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병상에 누운 최종우(56)씨에게 백천순(55)씨가 또 물었다. "눈이 올 것 같아요. 당신, 눈을 참 좋아했잖아요." 최씨는 미동도 없었다. 27년 동안 경찰관으로 일하며 든든히 곁을 지켜주던 남편은 5년 전 근무 중 당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신세가 됐다.

마사지를 하기 위해 담요를 치우고 환자복 단추를 풀자 최씨의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형상이 선명히 드러났다.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뒤틀린 남편의 팔과 다리를 아내가 정성껏 주물렀다.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이 벌써 6년째다.

2004년 3월 24일, 최씨는 충북 진천경찰서 이월지구대에서 경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 밤 9시쯤 술에 취한 20대 남자가 도로 중앙선 위를 걷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급히 출동한 최씨는 취객을 인도로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검은색 카렌스 차량이 이들을 덮쳤다. 무면허로 운전하던 50대 여성이 도로변에 주차된 순찰차를 보고 달아나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최씨는 취객을 인도 쪽으로 밀어냈지만,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최씨는 대전성모병원으로 이송돼 6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의료진의 얘기에 백씨는 말문이 막혔다. 아빠의 모습을 본 큰딸은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최씨는 이후 뇌수술만 8차례 받았다. 숨 쉬고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06년 경찰 제복을 벗었다. 하루 10번 넘게 대소변을 받아내고 간병을 하기 위해 부인은 운영하던 의상실 문을 닫았다.
 

지난 2004년 취객을 구하려다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 전직 경찰관 최종우씨. 27일 충북 진천의 현대병원에 입원 중인 최씨를 부인 백천순씨가 보살피고 있다./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5년이 지났지만 최씨의 상태는 별 차이가 없다. 당시 대학을 막 졸업했던 큰딸(31)은 교사가 됐다. 작은딸(28)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틈틈이 아빠의 병상을 지킨다. 백씨는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교복 전문점을 운영하며 간병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의 사고 이후 백씨는 도로변 인도를 잘 걷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차가 달려들 것 같아 웬만하면 주택가 골목을 이용한다"고 했다. 그는 우울증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씨의 한 달 병원비는 부인과 교대하는 간병인 월급을 포함해 450여만원이다. 3년 전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매달 국가보훈처에서 300여만원의 연금을 받지만, 병원비를 충당하기엔 모자란다. 백씨는 "그나마 우리는 나은 경우"라고 했다.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하면 사고가 난 지 3년이 지나면 병원요양비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부상 정도(1~14급)에 따라 월급의 15~80% 정도 나오는 장해연금으로 병원비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최씨가 목숨을 구한 취객과 사고를 낸 운전자는 단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힘겨운 그의 투병에 작은 정성을 보탠 사람들은 그가 남몰래 도와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이었다. 백씨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내게 돈을 쥐여주고 가면서 남편과의 인연을 전했다"고 말했다.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1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가셨어요. '최 형사님이 우리 집에 연탄 1000장을 넣어줬다'면서 그걸 못 잊어 왔다고. 50만원을 주고 간 대학생도 있었어요. '아저씨가 대준 등록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지요. 많은 분이 남편의 병상을 찾아 같이 울어줬습니다."

충북 진천의 시골마을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난 최씨는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했다. 군 제대 후 경찰시험에 응시해 1977년부터 고향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이듬해 백씨와 결혼해 신접살림을 차렸다. 부엌 없는 단칸 월세방이었다. 백씨는 "남편은 무뚝뚝했지만, 정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김장할 때면 남편은 항상 '넉넉하게 만들자'고 했어요. 절반은 혼자 사는 동네 노인들에게 나눠줬거든요. 길가에 엎드려 구걸하던 할아버지에게 월급을 다 주고 온 적도 있었어요."

1981년부터 서울 강동·강남·송파서에서 근무했던 최씨는 2001년 고향 진천으로 다시 내려갔다. 치매에 걸린 노모(당시 82세)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치매에 좋다는 약을 구해 직접 달이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골국을 수시로 끓였던 아들은 노모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내 아들 보고 싶어…." 노모는 2007년 이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백씨가 남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섭섭한 마음이 많았어요. 저하고는 여행 한 번 간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가끔씩 '없는 나한테 시집와서 참 고생 많아' '당신밖에 없어' 같은 편지를 보내줬어요. 2~3년에 한 번쯤…."

날이 저물었다. 창밖엔 눈발이 날렸다. 백씨가 남편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보, 좀 봐요. 눈이 와요. 내년엔 꼭 일어날 거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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