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도 없던 노숙아, 사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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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3-05 00:00 조회5,221회 댓글0건본문
자활 공동체 기업 '쌘뽈나우리' 운영하는 최종호씨
아동상담치료센터 입소 후 '엄마' 수녀가 권하는 일하며 자립에 대한 자심감 키워
주말마다 성당 돌며 좌판…
아버지는 막일을 했다. 이삿짐 날라서 번 일당을 들고 서울역 쪽방촌을 터벅터벅 걸어오곤 했다. 아버지가 숨졌을 때 그는 일곱 살이었다.혼자 남은 어머니가 빚쟁이를 피해 달아났다. 또래들이 초등학교에 갈 때 그는 남대문시장 옷공장에서 실밥을 뜯었다. 옷공장·오락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홉살부터 열한 살까지 그는 광양 친척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서울에서 돈 버는 누나에게 드문드문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누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누나가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몹시 앓았다.
가출했다. 친척이 하루 몇백원씩 주는 용돈을 모아 2만원이 됐을 때 기차표를 샀다. 서울역 쪽방촌에 돌아와 어머니를 수소문했다. 어머니는 외대역 뒤 반지하 방에 시각장애인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의붓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손톱깎이를 팔았다. 1년 반 뒤 어머니가 또 달아났다.
그는 먹을 것을 훔쳐 경찰서에 불려갔다가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 인계됐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 9명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다. 형사는 수녀들에게 "얘는 주민등록도 없다"고 했다. 2000년 겨울이었다.
- ▲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성당에서 자활 공동체 기업‘쎈뽈나우리’의 최종호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김보애 수녀(세번째)가 동료들과 함께 자체 개발한 황토 소금을 판매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10년이 흐른 지금, 최종호(23)씨는 심리치료 도구를 판매하는 연 매출 3억원의 자활 공동체 기업 '쌘뽈나우리'의 사장이 됐다. 작년 말엔 구운 소금 판매로 사업을 확장했다. 최씨는 "전부 엄마(센터장 김보애 수녀) 덕분"이라고 했다.
센터에 오기 전 몇달간 최씨는 어린 노숙자였다. 들어와서도 첫 1년은 툭 하면 가출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최씨에게 김 수녀는 꾸준히 '일'을 맡겼다. 꿩 우리 관리, 운동장 청소를 시켰다.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는 "칭찬받으면서 조금씩 내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김 수녀 앞에서 많이 울었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사람이 생기자 사는 게 덜 무서웠다. 2006년 최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국제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김 수녀가 "플래카드 걸자"고 흥분했다.
김 수녀는 그해 쌘뽈나우리를 설립했다. 김 수녀는 "제 몫 하는 성인이 되려면 18~27세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데 나라의 보호는 18세에 끝난다"고 했다. 수녀들이 애써 취직시켜도 아이들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그만뒀다. '○○가 노숙하더라'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김 수녀는 "그런 날은 가슴이 아파 밤새 못 잤다"고 했다.
김 수녀는 자립 대책으로 쌘뽈나우리를 세웠다. 최씨가 대표가 됐다. 회사 수익에 수녀회 기금을 보태 1억35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102㎡·31평)를 얻었다. 최씨를 포함해 20~36살 청년 11명이 이 집에 함께 살며 쌘뽈나우리에서 일한다. 회사 수익으로 학비와 공동 생활비를 대고, 월급(110만~350만원)은 김 수녀가 청년들 이름으로 적금 붓는다.
작년 말 경기도 여주의 옹기 장인이 옹기에 소금 굽는 기법을 '재능 기부' 해주었다. 카이스트 분석결과 미네랄이 풍부했다. 대진대 미대 교수가 무료로 판매 용기를 디자인해줬다.
이들은 주말마다 성당을 돌며 소금 좌판을 편다. 김 수녀가 앞장서서 "소금 사세요!"를 외친다. 수익금 일부는 더 불우한 계층에 기부한다. 김 수녀는 "받지만 말고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최씨가 센터에 들어온 뒤, 최씨의 어머니는 간간이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2007년 여름 의정부 골목길에서 쓰러졌다. 암 말기였다. 119 대원들이 최씨에게 연락했다. 서울 성가복지병원으로 옮기는 구급차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울었다.
일주일 뒤 새벽 2시 어머니는 혼자 숨졌다. 김 수녀와 최씨가 갔을 때 그녀는 아직 따뜻했다. 김 수녀가 말했다. "틀림없이 네 말을 들으실 수 있을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꼭 해라." 최씨가 떨리는 입술을 뗐다. "엄마, 다 털어버리고 천국에 가. 누나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해."
지난 일요일(2월 28일) 역삼동성당에서 소금을 팔던 최씨는 "돈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자동차 좋아하는 동생을 정비학원에 보내주고 싶어요. 요리 잘하는 형한테 빵집도 내주고 싶어요. 다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그걸 이루게 도울 거예요."
출처 : 2010년 조선일보 3월5일 52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