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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거리서 글쓰기 희망 찾은 노숙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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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0-05-28 00:00 조회5,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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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문학상 받은 최광리씨

지난 25일 서울 중구의 서소문공원에서 최광리씨를 만났다. 이 공원은 최씨가 거리의 생활을 할 때 자주 왔던 곳이다. [안성식 기자]

“시인 바이런은 ‘어느 날 아침 깨어나 보니 유명해졌다’고 했지만 나는 어느 날 아침 깨어나보니 노숙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서울역으로 향한 이유는 24시간 불빛이 있는 공간이 거기밖에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달 발표한 제18회 전태일 문학상 기록문 단편 수상작의 일부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란 제목의 이 글은 노숙생활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글의 저자 최광리(50)씨는 지금 서울 후암동 쪽방촌에서 산다. 월세 20만원의 6.6㎡(2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그는 “나는 노숙인이고, 잡 놈이며 글쟁이”라고 말했다. 밥벌이를 위해 펜을 들었지만,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삶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도 ‘글쓰기’라고 했다.

최씨는 자신의 글처럼 갑자기 노숙인이 됐다. 20여 년간 작은 잡지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그였다. 가장이자 두 딸의 아빠이기도 했다. 1999년 등산 도중 바위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실업과 부인과의 별거, 알코올 중독 등이 이어졌고, 먹는 것이 변변치 않아 영양실조 까지 걸렸다. 2004년 중학생이었던 두 딸을 엄마가 있는 미국으로 보냈다.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3년 동안 고향인 강원도 정선에서 요양을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몇 달 월급이 밀리더니 부도가 났다. 혼자 사는 원룸의 월세는 밀려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와보니 모든 세간이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집주인은 “월세는 됐으니 방을 비워 달라”고 했다. 짐을 옮기려 택시를 부르러 나간 사이 그나마 있던 세간도 도둑 맞았다. 부모·친척과도 인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그의 거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노숙인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게 아니라 누구든 될 수 있다”고 했다.

쪽방에서 하룻밤 만에 써내려간 단편 글은 2년간의 거리 경험에서 나왔다.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시멘트 바닥에 앉아 종교행사에 참여했던 이야기, 그렇게 기다려서 밥과 반찬을 받았지만 고약한 냄새가 났던 것, 급식소에서 줄을 서 있는데 직장 후배를 만나 서러워서 울었다는 친구, 모자란 잠을 벌충하려고 2호선 지하철을 삥차(무임승차)하는 일 등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술에 대해서도 썼다. “술 때문에 존재하고 술 때문에 죽는 게 노숙인”이라고 했다. 노숙인은 고독해서 술을 마시고, 그런 자신을 잊기 위해서 또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쳐다보면 창피해서 또 술을 마신다. 최씨는 “거리에 있을 때보다 주량은 줄었지만 요즘도 자주 마셔 종종 술병이 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쪽방을 얻었다. 다시서기노숙인상담보호센터와 성프란시스코 인문학 강의 수강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자존심과 건강도 회복했고, 다시 취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라면을 끓이려다 부탄가스가 폭발해 팔과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서 다시 실업자가 됐다. 최씨는 “전태일 문학상에 출품한 것은 상금 때문이었다”고 했다. 당장 실업급여가 끊기면 월세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잡지사 기자생활을 할 때도 종종 했던 창작이었다. 시는 써서 상도 받아보았지만 기록문은 생경했다. 지난해 한 문학계간지에 수필을 첫 출품해 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최씨는 전태일 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글을 읽어봤다고 했다. 못 쓴 부분만 눈에 들어와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밥벌이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 자신한테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큰 집이 있어도 자신의 삶을 잃고 황폐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비록 누추한 쪽방에 살고 있지만 글을 쓸 수 있고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노숙인의 생활을 쓰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자칫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묘사하거나 폄하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씨의 친구들은 “노숙인 중 네가 가장 글을 잘 쓸 테니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써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씨는 “거리에 있는 이들 중 악한 사람은 없다. 악하면 사기를 쳐서라도 살아간다. 우리도 술잔을 기울이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생각한다”고 했다.

작품 말미에 ‘노숙인 인문학 강의’ 코스에서 해남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썼다. 그는 땅끝마을의 바다에서 바람이 일러주는 꿈길을 보았다고 썼다. 세상의 모든 길이 끝났을 때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발바닥에 티눈처럼 슬픔이 박혀 절뚝거려도 그 길을 가야만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글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5/27/3771664.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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