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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착한 척하려 시작했다가..진짜 착해져버린 사랑의 밥차, 채성태(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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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7-19 00:00 조회4,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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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산 인생, 빚 갚아야죠"
복지시설 찾아 전복죽 봉사


요리사 채성태는 주중에는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주말이 면 소외계층에게 가서 요리를 한다. 식당에서 번 돈, 몽땅 주말 봉사로 써버리는 사내다. / 박종인 기자
 

얼마 전 경기도 장호원의 요양시설 '작은평화의 집'에서 잔치가 열렸다. 연례적으로 잔치를 여는 주방장은 채성태(43), 서울 이태원의 전복요리집 요리사다. 작은평화의 집엔 이런저런 이유로 장애를 입은 이들이 모여 산다.

채성태와 동행한 사람들은 '사랑의 밥차'라는 봉사모임 회원들이다. 차비를 주는 것도, 노임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이 '밥차가 간다'는 공지가 뜨면 전국에서 모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채성태의 반(半)협박, 그리고 협박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봉사를 하게 된 심리. 그 뒤에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채성태의 40년 삶이 녹아 있다.

 
그가 말했다. "언젠가 대형트럭 몰고 아들이랑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밥 해주고 여행 다니며 살겠다"고. 이태원의 해천(海川)이라는 전복요리집은 음식이 제법 괜찮다. 세상이 흉흉해지면서 매출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돈 꽤 번다.

그 돈이 밥차 운영으로 들어간다. 주말이면 그는 식당을 팽개치고 사라진다. 외식(外食) 한번 제대로 못하는 이들에게 가 돈가스, 회, 통닭, 전복죽을 해주기 위해서다. 그가 번 돈이 이 트럭에 실려 죄 사라진다.

채성태는 경기도 안성 사람이다. 어머니 병이 깊어지면서 가세가 기울더니 홀딱 망했다. 여섯 식구가 다리 밑에 천막 치고 살기도 했다. 배 고프면 보리쌀 구해다가 물에 불려 두고두고 먹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가 찾아오면 큰형 몫을 먹였고, 그날 큰형은 굶었다. 운동이 좋았다. 친구들은 "성태 저 자식, 경찰 아니면 나쁜 놈 될 줄 알았는데 요리사?"라고 놀린다. 유도4단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범도 좀 하다가 관뒀다.

이러저러한 사업을 벌이며 가난을 탈출했다. 운동하며 쌓은 시골 인맥이 두터웠던지라, 돈도 많이 벌었다. 운명의 1996년 겨울, 충남 태안으로 낚시를 떠났다. 고깃배 하나 사둔 거 타고 바다로 갔다.

바닷바람에 배가 뒤집히고 몇겹씩 겨울옷 껴입은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바다로 추락했다. "아들이 보였다"고 했다. 채성태는 물속에서 옷 다 벗어던지고 기도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꼭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 제발…."

채성태와 다른 한 사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 벌어놓은 돈 다 날리고 그는 죽다 살아난 그곳에 횟집을 차렸다. 전복 따서 약재(藥材) 섞어 만든 요리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이태원에 전복집을 냈다.

"그냥 내 입맛에 좋은 재료 섞어 만든 요리들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요리들." 매출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갔다. 요릿집이 잘 되면서 해천에는 명망가 단골들이 늘어났다.

아무 직함 없어도 이름 하나 서명 하나로 누군지 알만한 사람들의 추천장이 벽지처럼 식당 벽을 뒤덮었다. 착하게 살겠다던 굳은 맹세가 점점 깊은 망각의 늪에 처박혔다. 1998년 또 다시 운명이 찾아왔다.

지인(知人) 하나가 경기도 벽제 노인 수용시설에 자원봉사를 가는데 전복죽 좀 끓여달라고 했다. 마침 쉬는 날이라 50인분 만들어서 따라갔다. 그런데 가보니 전복죽 데울 가스레인지도 없는 것이다.

노인들은 차가운 전복죽을 맛있다고 먹었다. 그제야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자기가 죽어갈 때 뭘 기도했고 뭘 맹세했었는지를.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아 기억상실증이 치유된 그런 순간이었다.

수도권의 복지시설에 가서 100인분씩 전복죽을 대접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찬 음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요리, 즉 주린 배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평소 진짜 먹고 싶은 그런 요리를 먹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동식 주방이 필요했다. 2004년이었다. 집 사려고 넣어둔 적금을 깨서 3.5t짜리 트럭을 샀다. 트럭 짐칸을 개조해 주방을 만들었다. 지금은 보통명사가 돼 버린 '~밥차'라는 봉사모임의 시작이다.

경찰 아니면 깡패가 될 줄 알았던 채성태의 카리스마가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윽박질러댔다. 아무에게나 전화해 "올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나 미치겠다"고 우겼다.

그런데 얻어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동정심을 안고 현장에 도착하면 친구들이 우글거리며 "채성태 죽인다"며 벼르곤 했다. 채성태는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금은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친한 요리사들은 일식, 한식, 양식으로 분야를 나눴다. 떠나기 전, 식단을 주문받아 재료를 만들었다. 식사시간 맞추려고 전날부터 떠나서 한뎃잠 자며 음식을 만들었다. 모두 좋아했다. 받는 사람도, 요리 만드는 사람도.

 

후배인 청구건설 회장 이금렬(42)은 선배 하는 일을 지켜보다가 아예 5t짜리 트럭을 밥차로 내놨다. 연예인으로는 배우 이영범 부부, 이일화, 정준호, 고한우, 방대식, 홍종명, 유승혁, 웃찾사 가족들, 김혜진 등등.

예비역 공군 장성인 류홍규는 밥차 회원이 계기가 되어 일주일에 사흘을 따로 봉사활동 중이다. 태안 기름 유출사태 때는 사람들 교대해가며 하루 2000명분 세끼 밥을 했다. 자기 목숨 내놓을 뻔했던 그 바다다.

트럭을 사준 이금렬은 "아까 통장에 1000만원 넣었으니 그 돈 다 쓸 때까지 올라오지 말라"며 선배를 협박했다. 결국 두 달을 딱 채우고 상경했다. 지금 밥차 회원은 1000명이 넘는다.

 

그가 말했다. "예전엔 부모님 참 원망 많이 했다. 지금은 건강한 몸과 정신을 물려준 부모님이 너무 고맙다. 솔직히 처음엔 착한 척하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하다 보니까 점점 내가 진짜로 착해지는 거다."

요즘 채성태는 캄보디아에 출몰 중이다. 굵직한 사업 하나 벌여 큰돈 만지면 진짜로 몽땅 다 내놓고 큰 트럭 사서 시골 돌아다니며 요리하고 살겠다는 것이다. 지인들은 그때가 되면 또 얼마나 협박을 받게 될지 겁낸다고 한다.

 

박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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